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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는 치유와 화해의 과정

2019-03-20

 ‘기억의책' 박범준 편집장 "자서전 쓰기는 치유와 화해의 과정"

"글쓰기 보다 방법이 중요"... ‘자서전쓰기 코칭교실' 참여 권유

부모님 삶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삶을 정리한 이른바 ‘자서전’ 출판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특히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인 부모님의 생애 이야기를 자식이 직접 저술하거나 대행사에 맡겨 출판하는 예가 많다. 최근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가 아버지의 삶을 기록한 ‘인생극장'이 큰 화제를 모았다. 

자서전 쓰기 트렌드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자서전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서전 대행 전문기업 기억의책 박범준 편집장에게 물어봤다. 박편집장은 조선비즈가 3월20일부터 진행하는 ‘자서전쓰기 코칭교실'의 주요 강사이기도 하다.

-최근 자서전 쓰기에 나이 많은 사람들 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관심은 왜 생기고, 그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억의책 박범준 편집장이 회사의 모토가 걸려있는 액자를 배경으로 자서전 쓰기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사진=꿈틀 제공

자서전 쓰기를 단순화하면 자기 삶을 돌아보는 것과 이를 글로 써서 책으로 만드는 두 개의 과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지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은 그 자체가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보헤미안랩소디’를 보고 이유없이 눈물을 흘리는 경험과 비슷하죠. 20대가 책상서랍에서 어린시절 가지고 놀던 디지몬을 발견하고 잠시 상념에 잠기는 것도 마찬가지일테고요. 바쁘게 살면서 정작 스스로 관심 밖에 있던 ‘나의 삶’이 잠시나마 밝은 빛을 만나는 순간이죠. 

그 오래된 이야기를 바라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글로 쓰고 책으로 만드는 건 패션이나 소셜미디어와는 또 다른 수준의 자기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인쇄기술이 발달하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자신만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게 가능해졌어요.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지만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점점 늘어납니다. 기술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고요.

누군가는 소셜미디어에 짧은 생각을 담고, 순간을 담은 사진을 올리기도 합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다양한 다른 방식들과 비교하면,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다는 건 무척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에요. 일상이 아닌 일생을 다루는 일이고요.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자서전 쓰기란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제의(祭儀, ritual)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주변에서는 부모님의 자서전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부모님 자서전을 만들어 드리는 것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부모님 세대에게는 과거라는 시간이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있겠죠. 너무 힘들었지만 더 없이 소중하고,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데 이제는 내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져가는 나의 삶... 

인생의 황혼을 맞은 분들에게 지난 기억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또 책이라는 매체가 주는 의미도 더 각별하리라 생각합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을 살아온 분들에게 내가 주인공인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건 더욱 특별한 경험일 겁니다. 

내가 저자이고, 주인공이고, 내 삶과 내 사진과 내 가족과 내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손에 잡으면 ‘내가 그동안 헛 살지는 않았구나!’라고 느끼실 거라 상상해봅니다.

가족들에게는 부모님의 삶 이야기가 또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자식들은 부모님을 한명의 독립된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였으니까요. 

부모님의 철없이 뛰놀던 어린시절, 미래를 고민하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보면서 지금의 나와 다름 없는 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왠지 마음이 편해지죠.

사회적으로 보면 부모님세대의 인생사는 정말 굉장한 이야기 보물창고에요. 드라마 같지 않은 삶이 하나도 없고, 참 대단하게들 사셨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사라지기 전에 잘 기록하고 보관해아죠. 대단할 것 없는 삶의 이야기들이 모이면 시대의 역사를 이룰 거라 기대합니다. 


-자서전을 쓰겠다 생각을 해도 막상 글을 쓰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자서전을 쓸 때 어떻게 준비해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면 좋을지 알려주시죠.

삶을 돌아보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누구나 해볼만한 일입니다. 그래도 한 생을 큰 흐름 속에서 돌아보거나, 책 한 권 긴호흡으로 글을 쓰는 건 경험해보지 못한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당연히 쉽지 않아요. 성찰하는 힘도 있어야 하고, 마음의 여유와 함께 굳은 의지도 있어야 합니다. 과정이 길고 때로는 어디서 딱 막히기도 합니다. 바쁜 일이 생기거나 건강이 잠시 안 좋아서 손에서 놓으면 그 핑계로 포기하기 쉬워요.

글쓰기에 겁을 먹는 분도 있겠지만 차분하게 삶을 돌아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삶의 배경이 되어준 시간, 공간, 사람을 먼저 정리하고, 그 배경 위에서 벌어진 중요한 사건들을 정리해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리되면 글쓰기는 오히려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글쓰기 가장 어려운 건 ‘뭘 써야 할 지 모를 때'에요. 필력이 부족하더라도, 비문이나 오류가 있더라도, 우선 정리된 이야기를 잘 풀어놓으면 쉬워집니다. 일단 초고가 나오면 그때부터는 읽어보고 다듬고, 읽어보고 고치고…… 그 과정에 얼마나 정성을 쏟느냐가 결과를 좌우하죠.

글쓰기 선생님 보다는 삶을 돌아보고, 이야기를 정리하고, 글로 옮기는 전체 과정을 동행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행들과 함께 산에 오르면 산에 오르기 수월한 것처럼 도움이 되죠. 산을 먼저 올라본 사람이 갈 길도 일러주고, 포기하고 싶어질 때쯤 재촉도 해주면 더 좋겠죠.

-박편집장이 제작하는 ‘기억의책'은 지금까지 약 200여권이 나왔다고 하는데요, 기억의책을 좀 소개해 주시죠.

기억의책은 꿈틀이 제작대행하는 자서전 브랜드입니다. ‘모든 삶은 기록할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모토로 평범한 어르신들의 기억의책을 만들어 왔습니다. 대체로 자녀분들의 의뢰로 부모님의 삶을 기록합니다. 제주 해녀처럼 지자체가 나서서 지역공동체에 의미 있는 삶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의뢰가 들어오면 저희 작가가 주인공을 찾아뵙고 인터뷰해서 기억의책을 제작합니다. 

박범준 편집장은 아버지의 자서전<사진>을 쓰고 제작하며 ‘기억의책'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3년 전에 제 아버님 기억의책을 만들면서 사회적기업 꿈틀을 창업했어요. 그 경험이 정말 좋았거든요. 집집마다 부모님 기억의책을 만들고 기념하는 문화가 생기길 꿈꿉니다. 어르신들의 삶 이야기를 경청하고, 책으로 잘 만들어드리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억의책은 그 동안의 경험과 고객분들의 조언을 통해서 한 삶을 기록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과 비용과 분량을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200 페이지의 분량, 두 번의 인터뷰, 12권 증정, e-book과 슬라이드영상, 스캔한 사진과 인터뷰 녹음을 담은 USB 메모리 등등이 그 노력으로 찾은 답들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글씨체와 종이의 두께, 제본방식에도 ‘한 사람의 삶을 가장 잘 존중하는 책을 만들자’는 목표로 함께 노력해온 동료들이 찾아낸 무언가가 담겨 있습니다.

3년여의 노력으로 이제 기억의책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갈 자신감이 생겼어요. 인터뷰를 가면 장시간 인터뷰를 하신 어르신들도, 그 이야기를 경청한 작가들도 행복해합니다. 책이 한권 나올 때마다 가족들분에게 훌륭한 일을 한다고 칭찬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정말 운이 좋은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의책’을 제작하면서 느끼는 점이나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어떤 것인지요?

인터뷰하는 시간 동안 어르신들이 정말 행복해 하세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누군가 찾아와서 경청하는 시간이 참 좋으신거죠. 거의 예외가 없어요. 그분들에게 할 이야기가 많은데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게 보입니다. 

어떨 때는 눈물을 쏟기도 하는데 인터뷰하는 작가들도 같이 울게 됩니다. 그렇게 서 너 시간을 보내면 어르신들도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게 느껴지고, 작가들은 무언가 큰 배움을 얻었다고 느낍니다. 

기억의책으로 제작된 자서전들.
제가 처음 기억의책을 만들 때 ‘바람작은도서관'이라는 도서관을 제주도 중산간 작은 마을에서 운영하고 있었어요. 아흔이 넘은 이웃 할머니를 인터뷰해서 책을 만들어드렸어요. 그전엔 도서관에 종종 들러서 먹을 것도 권하시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던 할머니셨죠. 

‘하고 싶은 말씀이 참 많으시구나’ 생각했는데 기억의책을 만들다가 할머니가 글을 읽을 줄 모르신다는 걸 알게 됐어요. 척박한 중산간 마을에서 살아온 이야기, 병으로 어린 자식들을 잃은 이야기 등 참 힘든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참 담담하셨죠. 

시간이 흐르면 저렇게 담담해질 수 있는 건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책 제목이 ‘적어 둘 수 있었더라면'이었어요. 아주 초기에 만든 기억의책이기도 하고, 보람도 있었고… ‘모든 삶은 기록할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믿음에 힘을 보태주신 책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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